
우리의 의무 <이선미님>
배롱나무 꽃 피었다고 해서 맘이 설렜다.
담장 따라 무궁화도 만개했다는 소식은 더더욱 반가웠다.
배롱나무 꽃그늘에서 찍은 사진들, 의열사 담장 무궁화가 발길을 재촉했다.

절정을 지났지만 공원 곳곳에는 백일을 피고 지는 배롱나무 꽃이 여전히 선연한 꽃을 피우고 있다.

효창공원이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취가 있고 우리 독립운동가 몇 분이 모셔졌다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여태 방관하고 있던 곳이었다.
우리 근현대사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들여다보는 일이 늘 불편했다.
모른 척 관심을 두지 않고 여태 살았다.


백범기념관에서 바라다보이는 백범 묘역

삼의사 유해 봉환

올 들어 서울시민기자로서 기사를 쓰기 위해 여러 곳을 다녔다.
피상적으로 돌아봤던 서대문형무소에서부터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별히 임시정부 요인들이 어려운 살림을 꾸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자료들 앞에서 바윗덩이가 가슴을 내리눌렀다.
이렇게 하셨구나. 이렇게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어떻게든 나라를 되찾겠다고, 주권을 바로세우리라는 희망을 접지 않으셨구나.

기념관 2층에서 내려다본 백범 상
지금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계속되고 있는 <대한독립 그날이오면> 특별전에서는 여러 지역을 전전해야 했던 임시정부의 고난이 다시 그려졌다.
결국 사람 때문에 웃고 사람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 임시정부 사람들의 일이었다.
마음을 모아 신의를 지키며 함께 나아간 사람이 있고, 동료들을 배반하고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자들이 있다.
당시에도 ‘칠가살’이라는 자들이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적이며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은 일본이었으나 사람들을 가장 처참하게 한 건 밀정이었을 거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 가시밭길을 헤치며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 정보를 팔고, 친구를 팔고 나라를 팔 때 그렇잖아도 힘겨웠던 삶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그렇게 조금씩 힘든 역사를 내 현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종로 혜화동 로터리에 남아 있는 여운형의 자취,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김상옥 의사상, 김마리아의 활동이 드리워진 연동교회...
내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과거’가 이 나라 국민으로서, 서울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조금씩 강화했다. 여태 없었던 경험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효창독립 100년포럼 시민참여단에 함께하게 되었고, 그 첫 걸음을 떼는 답사를 향한 길이었다.
백범기념관을 돌아보고 묘역 앞에 섰다. 푸른 잔디밭에 쏟아지는 햇살이 가슴을 콕콕 찔렀다.
여전히 오늘도 끝나지 않은 듯한 독립운동. 여전히 오늘도 출몰하는 ‘토왜’들이 가슴을 짓눌렀다.
역사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꾸 분노가 이는 지점이 있다.
그 분노가 좋은 공동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한 작은 힘이라도 되기만을 바라본다.



백범기념관을 찾아 진지하게 살펴보는 학생들, 아이들과 함께 하나하나 짚어보는 부모들, 반려동물과 함께 삼의사 묘소를 산책하는 시민들, 맥문동 핀 길을 따라 달리는 소년들, 꽃들 흐드러진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시는 어르신들. 그리고 오늘도 넓은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고 정리중이던 시민들. 이 모든 것이 효창공원의 모습이다.


시작은 불편했지만 효창운동장 역시 우리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이미 수십 년을 더불어 살아온 공간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막연히 ‘서로 합리적인 조율을 통해’ 새로운 독립공원을 만드는 데 힘을 합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조금 들여다보니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당사자들의 인고의 수고가 필요해 보인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희망사항’을 제안하지만 정작 일을 만들어가는 전문가들에게 인내와 지혜가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우리가 더는 마음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곳, 힘들었던 기억 속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그런 효창공원을 소망한다.
우리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해야 목숨을 걸고, 생을 다 해 나라 위해 분투하신 분들의 수고도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물려주신 나란데, 그렇게 지켜주신 자유이며 민주주의인데 우리가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너무 죄송한 일 아닌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지금 고마워하며 누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 아닐까.
오늘도 이들을 기억하기위해 계단을 오른다 <전융 님>
효창독립100년포럼 시민참여단으로서의 활동을 기록하여 본다.
오늘의 일정이다.
백범김구기념관과 김구, 삼의사, 임정요인 묘역과 의열사 답사, 그리고 효창운동장 내부 관람까지 2시간 반의 여정이다.

1층 홀에 들어서면 보이는 백범 김구선생님의 동상이다.


나의 소원의 일부, 깊이가 느껴진다.

마음 좋은 사람 호심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 분의 말이었다는 사실을 오늘 알고 갑니다.

2층 홀에 들어서면 보이는 임정 태극기와 정부요인들의 단체 사진
무언가 숙연함과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임시정부 사람들의 단체 사진이라고 한다. 꽤 많은 분들이 헌신하셨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립을 위해 애쓰셨을 것이다.

유명한 백범일지의 친필본을 이곳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보물로 등록되어 있다. 제1245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동경로다.
타국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 이동경로만 봐도 짐작이 된다.

백범 김구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시계
이제 독립운동가분들의 묘역으로 이동하였다.
제일 먼저 간 곳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묘


효창독립 100년포험 위원장이자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인 서해성님의 설명이 있었다.
효창공원의 장소성과 역사를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말해 주셨다.


삼의사묘
이곳에는 윤봉길 의사와 일본 도쿄에서 히로히토 천황을 폭사(爆死)시키려다가 미수에 그쳐 일본군에 의해 사형을 당했던 이봉창 의사,
중국 상하이에서 당시 주중(駐中) 일본 대사를 저격하려 했다가 실패하여 옥사(獄死)했던 구파 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국내에 공식 운구되어
삼의사묘(三義士墓)에 안장되어 있다.


후손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도 오늘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독립운동에 온 재산과 평생을 바친 분들을 기리며, 잠시 묵념

하늘을 보니 아름답다.
찾아와서 기억해주는 우리들을 반기는 걸까?

효창공원내에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붙은 무궁화가 있다.
이봉창, 김구, 윤봉길, 안중근, 백정기 무궁화 각각 다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지막 장소인 효창운동장 내부
독립운동가의 모역인 이곳을 운동장, 유락시설로 만들어 버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느낀점>
사실 나는 효창공원이 이런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
학생시절 효창운동장에 축구경기 보러온 것이 전부다.
나뿐 아니라 역사적 의의를 가진 이곳에 대한 무관심이 계속되어서는 안되겠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근대사의 한복판에 있던 효창공원의 재조명이 필요하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역이 있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이곳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더이상 모역이 근린공원화(?)되어 방치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의무 <이선미님>
배롱나무 꽃 피었다고 해서 맘이 설렜다.
담장 따라 무궁화도 만개했다는 소식은 더더욱 반가웠다.
배롱나무 꽃그늘에서 찍은 사진들, 의열사 담장 무궁화가 발길을 재촉했다.
절정을 지났지만 공원 곳곳에는 백일을 피고 지는 배롱나무 꽃이 여전히 선연한 꽃을 피우고 있다.
효창공원이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취가 있고 우리 독립운동가 몇 분이 모셔졌다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여태 방관하고 있던 곳이었다.
우리 근현대사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들여다보는 일이 늘 불편했다.
모른 척 관심을 두지 않고 여태 살았다.
백범기념관에서 바라다보이는 백범 묘역
삼의사 유해 봉환
올 들어 서울시민기자로서 기사를 쓰기 위해 여러 곳을 다녔다.
피상적으로 돌아봤던 서대문형무소에서부터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별히 임시정부 요인들이 어려운 살림을 꾸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자료들 앞에서 바윗덩이가 가슴을 내리눌렀다.
이렇게 하셨구나. 이렇게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어떻게든 나라를 되찾겠다고, 주권을 바로세우리라는 희망을 접지 않으셨구나.
기념관 2층에서 내려다본 백범 상
지금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계속되고 있는 <대한독립 그날이오면> 특별전에서는 여러 지역을 전전해야 했던 임시정부의 고난이 다시 그려졌다.
결국 사람 때문에 웃고 사람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 임시정부 사람들의 일이었다.
마음을 모아 신의를 지키며 함께 나아간 사람이 있고, 동료들을 배반하고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자들이 있다.
당시에도 ‘칠가살’이라는 자들이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적이며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은 일본이었으나 사람들을 가장 처참하게 한 건 밀정이었을 거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 가시밭길을 헤치며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 정보를 팔고, 친구를 팔고 나라를 팔 때 그렇잖아도 힘겨웠던 삶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그렇게 조금씩 힘든 역사를 내 현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종로 혜화동 로터리에 남아 있는 여운형의 자취,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김상옥 의사상, 김마리아의 활동이 드리워진 연동교회...
내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과거’가 이 나라 국민으로서, 서울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조금씩 강화했다. 여태 없었던 경험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효창독립 100년포럼 시민참여단에 함께하게 되었고, 그 첫 걸음을 떼는 답사를 향한 길이었다.
백범기념관을 돌아보고 묘역 앞에 섰다. 푸른 잔디밭에 쏟아지는 햇살이 가슴을 콕콕 찔렀다.
여전히 오늘도 끝나지 않은 듯한 독립운동. 여전히 오늘도 출몰하는 ‘토왜’들이 가슴을 짓눌렀다.
역사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꾸 분노가 이는 지점이 있다.
그 분노가 좋은 공동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한 작은 힘이라도 되기만을 바라본다.
백범기념관을 찾아 진지하게 살펴보는 학생들, 아이들과 함께 하나하나 짚어보는 부모들, 반려동물과 함께 삼의사 묘소를 산책하는 시민들, 맥문동 핀 길을 따라 달리는 소년들, 꽃들 흐드러진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시는 어르신들. 그리고 오늘도 넓은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고 정리중이던 시민들. 이 모든 것이 효창공원의 모습이다.
시작은 불편했지만 효창운동장 역시 우리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이미 수십 년을 더불어 살아온 공간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막연히 ‘서로 합리적인 조율을 통해’ 새로운 독립공원을 만드는 데 힘을 합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조금 들여다보니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당사자들의 인고의 수고가 필요해 보인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희망사항’을 제안하지만 정작 일을 만들어가는 전문가들에게 인내와 지혜가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우리가 더는 마음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곳, 힘들었던 기억 속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그런 효창공원을 소망한다.
우리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해야 목숨을 걸고, 생을 다 해 나라 위해 분투하신 분들의 수고도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물려주신 나란데, 그렇게 지켜주신 자유이며 민주주의인데 우리가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너무 죄송한 일 아닌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지금 고마워하며 누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 아닐까.
오늘도 이들을 기억하기위해 계단을 오른다 <전융 님>
효창독립100년포럼 시민참여단으로서의 활동을 기록하여 본다.
오늘의 일정이다.
백범김구기념관과 김구, 삼의사, 임정요인 묘역과 의열사 답사, 그리고 효창운동장 내부 관람까지 2시간 반의 여정이다.
1층 홀에 들어서면 보이는 백범 김구선생님의 동상이다.
나의 소원의 일부, 깊이가 느껴진다.
마음 좋은 사람 호심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 분의 말이었다는 사실을 오늘 알고 갑니다.
2층 홀에 들어서면 보이는 임정 태극기와 정부요인들의 단체 사진
무언가 숙연함과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임시정부 사람들의 단체 사진이라고 한다. 꽤 많은 분들이 헌신하셨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립을 위해 애쓰셨을 것이다.
유명한 백범일지의 친필본을 이곳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보물로 등록되어 있다. 제1245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동경로다.
타국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 이동경로만 봐도 짐작이 된다.
백범 김구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시계
이제 독립운동가분들의 묘역으로 이동하였다.
제일 먼저 간 곳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묘
효창독립 100년포험 위원장이자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인 서해성님의 설명이 있었다.
효창공원의 장소성과 역사를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말해 주셨다.
삼의사묘
이곳에는 윤봉길 의사와 일본 도쿄에서 히로히토 천황을 폭사(爆死)시키려다가 미수에 그쳐 일본군에 의해 사형을 당했던 이봉창 의사,
중국 상하이에서 당시 주중(駐中) 일본 대사를 저격하려 했다가 실패하여 옥사(獄死)했던 구파 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국내에 공식 운구되어
삼의사묘(三義士墓)에 안장되어 있다.
후손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도 오늘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독립운동에 온 재산과 평생을 바친 분들을 기리며, 잠시 묵념
하늘을 보니 아름답다.
찾아와서 기억해주는 우리들을 반기는 걸까?
효창공원내에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붙은 무궁화가 있다.
이봉창, 김구, 윤봉길, 안중근, 백정기 무궁화 각각 다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지막 장소인 효창운동장 내부
독립운동가의 모역인 이곳을 운동장, 유락시설로 만들어 버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느낀점>
사실 나는 효창공원이 이런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
학생시절 효창운동장에 축구경기 보러온 것이 전부다.
나뿐 아니라 역사적 의의를 가진 이곳에 대한 무관심이 계속되어서는 안되겠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근대사의 한복판에 있던 효창공원의 재조명이 필요하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역이 있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이곳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더이상 모역이 근린공원화(?)되어 방치되어서는 안될 것이다.